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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찰스 다윈 1편

by soullog 2022. 8. 6.

찰스 다윈은 1809년 2월 영국 슈루즈베리에서 부유한 의사 로버트워링 다윈과 어머니 수잔 사이에서 2남 4녀 중 다섯째 아이이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은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진보 지식인으로 저명한 의사였다. 외할아버지는 영국 도자기 산업의 창시자이자 도예가이며 기업가인 조시아 웨지우드였다. 할아버지들은 박물학자였고 아버지 로버트와 어머니 수잔의 동생인 외삼촌은 모두 사업가로 다윈 가족과 웨지우드 가족은 모두 오랫동안 친밀했고 그의 부모님과 더불어 몇 쌍의 겹 결혼으로 인해 친한 인척 관계에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박물학적인 취미를 좋아했고 8살 때 식물과 조개, 광물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게 됐다. 아버지 로버트는 할아버지와 달리 박물학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꽃과 나무를 가꾸는 일인 원예가 취미였기 때문에 어린 다윈은 자신의 작은 정원을 가졌다. 할아버지와 같은 이름인 형 에라스머스는 화학 실험에 몰두했고 다윈에게 실험을 돕게 했다. 다윈은 형을 라즈라고 부르며 그리워했다. 어머니 수잔이 다윈이 8세 때 생을 마감하고 누나인 캐롤라인 등 3명의 누이가 어머니를 대신해서 다윈을 키웠다. 아버지 로버트는 아내의 죽음으로 성격이 엄해졌지만 아이들이 혹시 비뚤어질까 염려하여 심하게 꾸짖지는 않았다. 이러한 집안의 가풍은 다윈이 어진 성품과 당시로선 자유로운 성공회 믿음을 가지게 했다. 웨지우드 가문은 다윈의 탄생 당시 이미 종교개혁으로 영국의 전통교회로 뿌리내린 성공회를 받아들였지만 양가 모두 원래는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보다는 사람으로서의 예수에 무게를 두는 반 삼위일체 기독교 교회인 유니테리언 교회의 신도였다. 다윈 가는 휘그당의 급진 자유주의에 뜻을 같이 하고 있었다. 이렇듯 다윈의 집안은 자유주의가 전통인 집안이었으나 아버지 로버트는 관례에 따라 아이들에게 성공회에서 세례를 받게 했다. 다윈은 할아버지 에라스무스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어려서부터 할아버지가 쓴 책들을 읽으면서 생물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1817년부터 1825년까지 다윈은 초중등 교육을 받았다. 초등학교 시절 다윈은 교육을 지식 전수로 잘못 이해해서 학생만의 좋은 점들을 존중하고 키워주지 않는 잘못된 교육 때문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여 교사에게서 항상 멍하게 있는 녀석이라는 심한 욕을 듣기도 했다. 1818년 다윈은 슈루즈버리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에 큰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찰스 다윈은 형인 이래즈머스 다윈과 함께 학교 정원에 화학 실험실까지 마련했다. 의사였던 아버지 로버트 다윈은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희망했고 그를 의대로 진학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찰스는 의학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청소년기 때부터 곤충 채집과 동물 관찰에 흥미를 보였다. 아버지는 그를 설득했지만 다윈은 딱히 설득되지 않았다. 다윈은 16세 때인 1825년에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기 위해 부모 슬하를 떠나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의학을 배웠다. 그러나 피를 봐야 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가졌고 의학보다는 곤충 채집 같은 경험에 입각한 자연계의 다양성을 좋아했다. 더구나 마취학이 없었기 때문에 수술이 환자에게 고통을 주는 19세기 유럽 의학의 인도주의에 어긋나는 모습과 지나치게 학문에 치우친 의대 교수들의 지루한 강의에 친숙해지지 못하고 1827년에 에든버러 대학교를 떠나게 된다. 아들이 성공회 신부가 되기 바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케임브리지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본인의 흥미에 따라 식물학자 헨슬로와 지질학자 아담 세지웍의 지도를 받았고 1831년에 최고 성적으로 졸업했다. 과학 역사는 이 두 대학교 시절을 다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것으로 보고 있지만 본인은 훗날 회고록에서 학문으로서 대학교도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흑인 해방 노예 존 에드먼스턴에게서 동물의 박제 제작 방법을 배웠다. 이때 배운 박제 제작법은 나중에 비글호의 항해에 참가해 생물 표본을 만들 때 많은 도움이 됐다. 2학년 때는 플리니 협회에 소속해 해양 생물의 관찰 등에 종사했다. 다윈은 로버트 에드몬드 그랜드의 해양 무척추동물의 생활환경과 해부학의 연구를 도왔다. 어느 날 그랜트는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의 진화 사상을 칭찬했다. 다윈은 놀랐지만 그 무렵 할아버지의 책을 읽어 유사한 개념을 알고 있었고 그리고 그 생각이 논쟁적인 것을 알고 있었다 대학교의 박물학의 수업은 지질학의 수성론과 화성론 논쟁 등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지루했다. 또 식물의 분류를 배워 당시 유럽에서 가장 많은 식물 수집을 자랑한 에든버러 대학교 박물관에서 연구를 도왔다. 다윈은 성공회 교회에서의 목회보다는 생물학과 지질학에 관심이 많아 세지 위크 교수를 따라 북웨일스에 지질학 연구를 위해 여행했다. 헨슬로의 추천으로 1831년 12월 27일 로버트 피츠로이 선장이 이끄는 비글이라는 이름의 탐험선에 박물학자로서 타고 약 5년 동안 탐사 여행을 했다. 당시 그는 생물학자로서 승선한 게 아니라 지식인들과의 교류를 원하는 선장의 지적 욕심에 따라 승선한 것이다. 선실이 너무 비좁았기 때문에 다윈은 피츠로이의 함장실을 함께 사용했다. 비글호의 항해는 피츠로이가 의도한 대로 거의 5년 간 지속됐고 다윈은 그 시간 대부분을 육지에서 지질학을 조사하면서 그리고 자연사 수집물을 수집하면서 보냈다. 그동안 비글호는 해안을 탐사하고 지도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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