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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지그문트 프로이트 2편

by soullog 2022. 7. 30.

프로이트는 시간 약속 같은 것을 지나칠 정도로 꼼꼼히 챙기는 스타일이었다. 영국제 양모 정장에 옷감은 꼭 아내가 골라준 것을 썼다. 젊은 시절 자존심이 강했던 그는 농담 삼아 양복장이의 인상이 내게는 담당 교수의 인상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1930년 프로이트는 심리학과 독일어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괴테 상을 받았다. 3년 뒤에 나치가 독일에서 집권했으며 이들이 불태우고 없앤 책 가운데서도 프로이트의 책이 특히 두드러졌다. 1938년 3월에 나치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병합했다. 비엔나에서 반유대주의 감정이 들끓었으며 프로이트와 가족의 집에는 비밀경찰들이 들이닥치기도 했다. 또 비엔나 정신 분석 학회가 해산당하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책과 재산이 모두 몰수당하자 프로이트는 자유롭게 죽기 위해서 망명길에 오르기로 결심했다. 그와 가족은 1938년 6월에 비엔나를 떠나 런던 햄프스티드의 20 메어스필드 가든스로 이주했다. 스위스 코티지 근처에 벨사이즈 길과 피츠존 거리의 한쪽 모퉁이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지독한 애연가였던 프로이트는 구강암 때문에 생전에 30번이 넘도록 수술을 받았다. 1939년 9월에 그는 의사이자 친구인 막스 슈어를 설득해서 자살을 돕도록 했다. 프로이트는 미완성 원고 정신 분석학 개관을 남겨두고 1939년 9월 23일에 사망했으며 죽은 지 사흘 뒤에 그의 유해는 영국 골더스 그린 공동묘지에 매장됐다. 자유 연상은 심리학에 사용되는 기술로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창시됐다. 프로이트는 최면술이 틀리기 쉽고 의식이 있는 동안에 중대한 기억에 대해서 환자들이 회복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최면술로 치료하기를 그만두었다. 자유 연상 기법을 통해 프로이트는 명백하게 중요하지 않거나 잠재적으로 환자를 압박할 수 있는 혼란스러운 기억이 될지라도 그런 것에 관계없이 환자들에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든 말하도록 했다. 이 기법은 모든 기억은 단일 연합의 네트워크에 정렬되어 있고 당장이든 후일에든 그것은 중대한 기억과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불행하게도 프로이트는 기억해내는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장 고통스럽고 중요한 기억이 환자에게 저항을 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결국 일정한 기억들이 철저하게 억압되어 있다가 정신의 의식 영역으로 뚫고 올라올 것이라는 견해를 갖게 된다. 프로이트의 궁극적인 정신분석학적 치료는 그것들을 정신 깊숙이 묻어버리는 내부적인 정신 갈등으로서의 이러한 기억들의 회상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지 않았으며 자유 연상 기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신에 관한 연구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무의식이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대중화한 심리학자로 정신분석 학회의 창시자다. 무의식적 갈등이 정서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그의 이론은 이후 자연스럽게 정신질환을 이해하는 길을 열어줬다. 한편 그는 최면이 어떻게 신경증 치료에 도움을 주는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후에 현재 대화 치료로써 발전해서 알려져 있는 자유 연상과 꿈의 해석에 대해서 이를 지지하며 최면술을 포기했다. 이들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핵심 요소가 됐다. 프로이트는 특히 그 당시에 히스테리라고 불렸던 것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이는 지금 전환 신드롬이라고 불리고 있다. 프로이트의 이론들과 환자에 대한 그의 치료는 19세기에 비엔나에서 논쟁이 되고 여전히 오늘날에도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프로이트의 아이디어는 그것들을 과학적 의학적 논문으로서 계속 논의되는 것뿐만 아니라 문학과 철학, 일반 문화에서 종종 논의되고 분석되어 왔다. 프로이트는 신체 부위에서 리비도의 이동에 따라 쾌감을 추구하는 신체 부분 또는 방법이 달라지는 데 따라 발달 단계를 구분했다.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재기, 성욕기로 나누는데 이를 심리성적 발달 단계라고 한다. 처음의 세 단계에서는 자신의 신체부위에서 만족을 추구하므로 전성욕기라고 한다. 뒤의 두 단계에서는 특정의 신체부위가 아니라 이성관계 등 사회적 활동을 통해 만족을 추구하므로 성욕기라고 한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반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일 수 없다고 봤다. 아돌프 그륀바움은 정신분석학은 반증 가능하며 사실상 틀렸음이 증명되었다고 주장한다. 비판자들과 옹호자들 간의 논쟁은 때때로 매우 격렬해져서 이러한 논쟁들은 프로이트 전쟁으로 보였다. 한편 알프레트 아들러나 칼 융의 경우는 프로이트와는 다른 관점에서 무의식의 개념을 다룬 바 있다. 또한 행동주의 심리학의 초기에는 정신분석학이 클라이언트에 대한 심리적 접근에서 절대적으로 보다 효과적 일수 있는 근거는 찾을 수 없었다는 맥락의 보고를 한 바 있다. 그러나 많은 심리학자들은 프로이트가 개척한 인간의 무의식 영역과 본능에 대한 깊은 이해의 결과물들이 논리적이지 않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데에도 동의한다. 프로이트는 삶을 향한 본능과 죽음을 향한 욕구를 제시한 바 있다. 프로이트는 그 연구결과물에서 초기에는 리비도만을 언급했으나 점차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타나토스와 함께 리비도를 다루고 있다. 자기 방어기제는 프로이트가 발표한 이론으로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다. 압도되는 불안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함은 물론 기능을 수행하도록 도와준다. 자기 방어 기제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무의식 차원에서 작용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현실을 왜곡하게 지각하여 불안을 감소시키도록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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